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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골프공 박사 "입사초기 칼로 밤 까듯 공을…"

블루스웨터 2011. 4. 3. 23:27

골프공 박사 김현진 씨가 자신이 개발한 5피스 골프공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김상선 기자]
세계 첫 5겹 골프공 만든 테일러메이드 연구원 김현진 박사

‘남자는 비거리다.’ 국내 한 골프용품 업체의 광고 문구입니다. 그런데 비거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골프용품은 뭘까요. 클럽도 거리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골프공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골프공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여기에 10년 넘게 오로지 골프공만을 연구해 온 ‘골프공 박사’가 있습니다. 미국 테일러메이드 본사에서 골프공 개발을 맡고 있는 재미동포 김현진(49) 박사입니다. 최근 신제품 설명회를 위해 고국을 찾은 그를 golf&이 만나봤습니다.

정제원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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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7mm, 45.93g과 함께 13년

닥터 현 킴(Hyun Kim). 미국인 동료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골프공 박사’인 재미교포 김현진씨 이야기다.

그의 명함에는 골프용품업체인 테일러메이드의 로고와 함께 리서치 디렉터(research director)란 직함이 새겨져 있다. 김씨가 골프공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7년. 한양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 자동차 범퍼 소재 개발을 맡았던 그는 97년 테일러메이드 미국 본사에 입사했다. 미국 클리블랜드주 오하이오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였다.

김씨는 이후 13년 동안 골프공 개발에만 몰두해 왔다. 골프공에 쓰일 신소재를 개발하고, 골퍼들이 만족할 만한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게 그의 주 업무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스배드의 테일러메이드 본사에서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한다. 40여 명의 미국인 직원(테크니션)들이 그와 함께 골프공을 ‘연구’ 중이다.

“고등학교 때 제가 제일 싫어하던 과목이 화학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아주공대 고분자공학과)에 들어가보니 유기화학이란 게 참 재미있더군요. 그렇지만 제가 10년 넘도록 골프공만을 연구할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지금은 골프공을 연구하는 작업이 고무 화학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씨는 “1997년 헤드헌터로부터 골프공 소재를 개발할 적임자를 찾는 중이란 말을 듣고 무척 망설였다. 고분자공학을 전공한 뒤 고작 골프공 따위를 연구해야 한다니 자존심도 상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골프공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겠지만 골프공이야말로 첨단 과학의 결정체다. 그때 골프업체와 인연을 맺은 게 참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부순 공만 수만 개
 
김씨는 13년 동안 수만 개의 골프공을 까부쉈다. 골프공을 연구하기 위해 공을 절반으로 자른 뒤 해부하는 작업을 반복해 온 것이다. 하루에 많을 때는 골프공 36개(3박스)를 까본 적도 있다. 골프공의 구조와 재질을 샅샅이 살펴보고 테스트하기 위해서다. 입사 초기엔 펜치와 칼을 이용해 마치 밤을 까듯 골프공을 깠다. 요즘엔 기계를 이용해 골프공을 자르고, 껍질을 벗겨낸다고 했다.

김씨의 주 업무는 골프공에 쓰이는 새로운 소재 개발이다. 김씨는 “골프공 소재는 97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조만간 소재가 완벽히 바뀔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만간 골프공 소재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란 게 김씨의 주장이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지금보다 거리가 2~3배 이상 더 나가는 골프공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골프협회(USGA)의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골프공을 만들다보니 제한이 많이 따를 수밖에 없지요. 그럼에도 골프 관련 용품 가운에 골프공이야말로 가장 많은 신기술이 적용된 품목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골프공 제조 기술이 발달하면서 프로 선수의 경우엔 거리가 10년 전에 비해 10야드 이상 늘어났지요.”

김씨는 그래서 골프공 제조를 ‘고무 화학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골프공 제조는 음식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재료는 똑같아도 가공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고무도 마찬가지지요. 동시에 소재 개발의 여지가 많은 첨단 과학이기도 합니다.”

모순과 싸우는 작업

김씨는 “골프공 개발은 ‘모순(矛盾)’과 싸우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골프공을 만드는 일은 어떤 방패든 뚫을 수 있는 창을 만드는 동시에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를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42.67mm 작은 골프공 하나가 ‘모순’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대부분의 골퍼는 조금이라도 거리가 많이 나가길 원합니다. 누구나 300야드를 날려보내는 꿈을 꾸지요. 동시에 그린 주변에서 골프공이 잘 서길 바랍니다. 이른바 컨트롤이죠. 특히 프로 골퍼들은 거리보다는 컨트롤이 잘되는 공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다시 말해 거리도 많이 나가면서 그린 주변에선 척척 서는 공을 만드는 게 저의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골프공을 만드는 일을 모순에 비유하는 거지요.”

거리가 많이 나가려면 경도가 높아야 한다. 즉, 딱딱한 공일수록 멀리 나간다는 것이다. 반면 경도가 높으면 공을 세우기 어렵다. 멀리 나가면서도 컨트롤하기 쉬운 골프공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씨는 최근 5피스 골프공(테일러메이드 펜타 TP)을 개발했다. 두 겹짜리 2피스에서 시작해 3피스, 4피스를 거쳐 코어에서부터 골프 껍질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섯 겹으로 된 골프공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겉에서부터) 네 번째 레이어(소재)가 전 세계에서 처음 개발된 신소재(탄성 중합체)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요즘은 골프공 개발에 그치지 않고 소재 자체를 특허 내는 일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골프공을 만들기 위해 개발한 신소재는 앞으로 자동차나 비행기, 전자제품에도 쓰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래서 테일러메이드를 비롯한 세계적인 골프용품 업체들은 소재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신소재로 만든 골프공과 기존 제품의 품질 차이는 얼마나 날까.

“골프공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떤 공은 스핀이 잘 걸리고, 또 다른 공은 비거리가 많이 납니다. 어떤 공은 딱딱한 편이고, 또 어떤 공은 너무 무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너무 가볍다’ 또는 ‘너무 무겁다’고 말하는 건 결국 느낌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든 공이오? 경쟁사 제품과 비교해도 자신 있습니다. 그만큼 공을 들였기 때문이지요. 국내 골프용품 업체가 만든 골프공도 봤습니다. 예전보다 품질이 좋아진 건 확실한데 일부 업체의 경우엔 메이저 업체의 특허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김씨는 “내가 다니는 회사엔 특허 출원만 전담하는 변호사가 따로 있다. 내 업무의 3분의 1 가량은 다른 회사의 특허를 침해하는 건 아닌지 검토하는 것”이라며 “국내 업체의 경우 본의 아니게 특허 소송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골프 실력은 보기 플레이어 수준. 한 달에 한 차례 정도 골프를 즐긴다는 그는 “출장이 잦고, 연구 논문을 쓰느라 골프를 칠 시간이 많지 않다”고 했다.

정제원 기자 [newspoet@joongang.co.kr] 
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