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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경향)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5) 대도시들은 거대한 슬럼

블루스웨터 2011. 3. 2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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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더 이상 갈 곳 없는 ‘밑바닥 10억’… 도시의 그늘서 사투

고층건물이 솟아오르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경제수도 라고스. 바닷가를 따라 난 허버트 매컬레이 고가도로 위로 일본제, 유럽제 자동차들이 달린다. 그 아래에는 라고스 주민들이 아데콜리 빌리지라 부르는 수상촌(水上村)이 있다. 세상 어디에서나, 뭍에서 몸 누일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밀리고 밀려 정착하는 곳이 물 위다. 지나가는 이들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일지 모르지만 거기 사는 이들에겐 열악한 생존의 현장이다.
해변 점령한 판자촌 나이지리아 라고스 주민들이 아데콜리 빌리지라고 부르는 수상촌(水上村). 판자를 엮어 만든 집에 사는 이곳 주민들은 나룻배로 고기를 잡거나 목재공장에서 일하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라고스 | 구정은 기자

뭍에서 밀려나 물위 정착
쓰레기와 동거 열악한 삶


말이 좋아 ‘마을’이지 아데콜리는 ‘주거지’라고 하기 힘든 곳이었다. 얕은 바다에 띄운 나룻배에선 여성들과 아이들이 고기를 잡고 있고, 사이사이 좁은 부지에는 온통 목재 가공공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습기와 열기와 톱밥이 뒤섞여 숨이 막혀왔다. 바다는 온갖 오염물과 쓰레기로 울긋불긋 물들어 제 색깔을 알기 힘들었다.

얼기설기 엮은 판잣집들 사이 그늘진 통로에는 일자리 없이 노는 젊은 청년들이 드러누워 있었다. 지난달 초 수상촌을 찾았을 때 주민들은 성난 얼굴로 이방인을 바라봤다. 내륙 지방과 라고스 주변 여러 주(州), 혹은 베냉 등 이웃나라에서 온 가난한 이주자들이 주민의 주를 이룬다. 상당수 주민들은 주중에 이곳 판잣집에 살며 고기를 잡거나 목재공장에서 일하고, 주말엔 멀리 떨어진 시골 집으로 돌아간다. 수상촌 건너편 빅토리아 아일랜드에는 아덴지 아델레 거리의 높이 솟은 스카이라인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라고스 해안 아파파 항구로 가는 길. 차량 정체가 시작되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차 문을 열려고 달려드는 한 소년을 옆에 있던 소녀가 재빨리 막더니, 아무것도 못 먹었다며 자기에게 돈을 달라는 시늉을 한다. 라고스 슬럼가는 외국인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자칫 밤중에 차량 정체로 멈추기라도 하면 젊은이 수십명이 멈춰선 차들을 앞에서부터 훑어가며 강탈을 한다. 한국대사관의 한 직원은 “강도들을 만나면 현지인이건 외국인이건 달라는 대로 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대도시들은 예외 없이 거대한 슬럼이다. 세계은행 분석가로 일했던 개발경제학자 윌리엄 이스털리가 ‘밑바닥의 10억명(Bottom Billion)’이라 부른 절대빈곤 상태의 사람들, 이른바 ‘지구상 하위 10억명’ 대부분이 아프리카에 산다. 농촌에서도 먹고 살지 못해 도시로 몰려온 슬럼 주민들은 글로벌 시대의 가장 어두운 그늘이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시내 서민주택가인 요뿌공에서 와사까라 슬럼으로 이어지는 지역은 ‘판잣집의 바다’였다. 상업중심지인 아자메의 시외버스터미널에 이르자 노숙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낮에는 구걸이나 도둑질을 하고, 밤에는 버스 밑에 들어가 잔다. 이곳 서민들의 교통수단은 ‘워러워러’라는 거의 망가진 택시와, ‘바카’라는 이름의 미니버스다. 문짝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워러워러와 바카를 번갈아 타고 해안마을 벵제르빌로 이동했다.

벵제르빌은 옛 식민시절 한때 수도였던 해안도시지만 지금은 아비장 외곽의 슬럼이 됐다. 아르마탄(사하라에서 오는 모래바람)이 이미 지나갔는데도 공해와 먼지가 뒤섞여 대기는 뿌연 빛이었다. 꼬불꼬불 진흙길을 따라 들어가니 빈민가가 나왔다.

아비(33)라는 여성은 11명의 식구와 흙집에 살고 있다. 벌이는 딱히 없고, 구근 작물인 카사바나 야자를 따다 팔아 간신히 먹고 산다.

도시외곽 ‘판잣집의 바다’
구걸·약탈·유혈폭동 빈번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음식을 만드느라 덤불을 태워 마당에 매캐한 연기가 꽉 차 있었고, 그 옆에는 버려진 망고 껍질에 파리떼가 득시글거렸다.

타 주느비에브(40)는 서부 파코블리에서 살다가 분쟁이 일어나 4년 전 이곳으로 왔다. 남편과 시누이, 여섯 아이들과 살고 있다. 남편은 아비장 시내에서 경비원으로 일해 한 달에 5만세파(약 12만5000원)를 번다. “파코블리에서는 남편이 재봉사 일을 해 형편이 좋았는데 여기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타 주느비에브는 “내게도 돈을 벌 수단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종잣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옛 식민시절 건물을 개조해 만든 언덕 위 고아원에서는 아이들이 줄을 서 예방주사를 맞고 있었다. 주사를 맞은 아이들은 한쪽에 모여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고의 경제 수준을 자랑하지만 슬럼으로도 유명한 나라다. 지난달 22일 남부 웨스턴케이프주 드두어런스의 슬럼을 방문했다. 5000여 주민들 중 대부분은 코사족이다. 차에서 내리자 슬레이트로 지붕과 벽을 두른 나지막한 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른들은 주변 포도 농장으로 일을 나가고 아이들만 남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의 유일한 장난감은 폐타이어다. 폐타이어로 만든 그네를 타고 있던 노바 펠로(5)는 장래희망을 묻자 “농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이 보고 듣는 유일한 ‘직업’이 포도 농장의 농업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요하네스버그 외곽의 알렉산드리아 슬럼은 웬만한 남아공인들도 들어갈 엄두를 못 낸다.

남아공조차 곳곳 빈민굴
아이 희망은 “일하고 싶다”


이곳에서는 시시때때로 유혈 폭동이 일어난다. 2008년 5월에는 짐바브웨, 모잠비크 등에서 온 이민자들을 겨냥한 빈민들의 공격이 일어나 ‘제노포비아(인종혐오)’ 범죄가 남아공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사망자만 모두 62명.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 종식 이후 최악의 유혈사태로 기록됐다. 이민자들이 요하네스버그 토착 줄루족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슬럼 안의 빈곤층이 부족한 일자리를 두고 서로 다투는 형국이다. 교민 박대범씨는 “알렉산드리아는 사실상 경찰도 포기한 지역”이라고 전했다. 남아공 슬럼들은 대부분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흑인들을 강제이주시키면서 형성됐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백인정권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무너지고 16년이 지났지만 슬럼의 치안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 외곽의 키베라 슬럼은 동아프리카의 빈민과 난민들이 모두 모이는 아프리카 최대 슬럼이다. 계절에 따라 오고가는 사람들이 있어 인구는 60만명에서 150만명 사이로 추산된다. 면적은 나이로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나이로비 인구의 4분의 1이 키베라에 산다.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는 가구는 거의 없다.

<벵제르빌·라고스·요하네스버그 ·드두어런스 | 구정은·이청솔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입력 : 2010-05-10 17:47:16수정 : 2010-05-10 17: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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