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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경향)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3) 독립 50주년, 성찰의 시기

블루스웨터 2011. 3. 2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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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우리에게 주인의식 있나”… 이제야 ‘진정한 독립’ 자문
ㆍ박물관·학교 등 건물 대부분 식민지 시대 모습 그대로
ㆍ국가 주도 기념행사 열기에“외국의 그늘 여전” 냉소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 교외 코코디에 있는 아비장 국립대학교를 지난달 찾았다.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에선 뙤약볕을 피해 그늘로 모여든 학생들이 삼삼오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올해는 1960년 ‘아프리카 독립의 봄’ 이후 50년이 되는 해다. 아비장 대학 학생들을 만나 ‘독립 50주년’의 의미와 아프리카의 장래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젊은이들은 “진정한 독립을 이루었는가”라는 질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식민 건물 위 남루한 “개교 50년” 코트디부아르 그랑바삼의 한 고등학교에 ‘개교 50주년’을 알리는 글이 쓰여 있다. 프랑스 식민통치 때 지어진 이 건물은 독립과 함께 학교로 바뀌었지만 이후 보수공사가 이뤄지지 않아 낙후된 채 남아 있다. 그랑바삼 | 구정은 기자

“그들이 떠나고야 시험대에 올랐다”

통계학과 학생 레옹은 “우리가 쓰는 물건 대부분이 프랑스 것이고, 몇 안 되는 기업들도 프랑스 기술에 의존한다”며 “우린 여전히 그들 그늘 밑에 있다”고 말했다. 법학과 2학년 도소 페리마(22)와 마리잔(22)은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안 좋아진 것 같다”며 정부의 기념행사들에 냉소를 보냈다.

프랑스 식민정부의 첫 수도였다는 상아해안의 옛 도시 그랑바삼. 프랑스인들이 지은 낡은 2층 건물은 박물관이 되어 있었다. 복도에는 백인 관료들이 흑인 원주민들을 부리는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들이 걸려있고, 전기가 모자라 어두컴컴한 전시실에는 이 나라 여러 부족의 전통의상을 입힌 인물모형들이 서 있었다. 아름답지만 낡은 박물관을 나오면 식민지 시절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거리를 만난다.

해안 마을은 철 지난 관광지 같았다. 길모퉁이 학교 담장에 ‘개교 50주년 기념’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프랑스인들이 쓰던 건물이 독립과 함께 학교로 변했지만 그 뒤 신축·보수공사를 하지 않아 50년 전 그대로였다. 외세가 물러난 뒤 이 나라가 이룬 것이 무엇인지를 낡은 건물이 되묻고 있는 듯했다. 고즈넉한 바닷가에선 프랑스인 몇명이 파도에 밀려온 쓰레기들 사이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코트디부아르는 독립 이후 안정을 구가했지만 2000년대 들어 남쪽의 정부군과 북쪽의 반군 간 유혈충돌이 일어난 뒤 경제가 황폐해지고 인프라도 후퇴했다. 가장 큰 변화는 프랑스인들이 떠난 것이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데비(39)는 “우리는 주인의식이 없었다. 내전으로 외국인들이 떠나면서야 비로소 시험대에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위기가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국민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 스스로의 문제와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각축전을 벌였던 서아프리카에서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베냉 등이 50년 전 독립을 했고, 동·남부 아프리카에서도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 탄자니아, 소말리아 등이 자유를 얻었다. 대륙의 가로세로로 국경선이 그어져 신생국가들이 우르르 탄생했다. 그중엔 오랫동안 역사적·지리적·문화적 공동체를 구성해온 나라도 있었고, 아무 상관없는 민족들이 뜻하지 않게 한 국경 안에 속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반세기의 성과를 묻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아프리카는 다른 어떤 대륙보다도 많은 재난과 분쟁을 겪었다. 똑같이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가난 속에 출발한 아시아 국가들이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세계의 주역으로 거듭난 것과 달리, 아프리카는 반세기 내내 갈지자 걸음을 해왔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은 이제 자원과 경제개발을 발판으로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며 ‘제2의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아비장 시내 두플라토 고급주택가의 독립50주년 기념준비위원회 사무실을 찾아가 지지 아돌프 카조 부위원장을 만났다. 준비위는 국민화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스포츠행사들과, 매스컴을 통해 독립 이후 국가 수립과 재건 과정을 직접 경험한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는 연중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직 대법관이기도 한 지지 부위원장은 솔직하게 지난 반세기를 평가했다.

“우리의 테마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지난 50년간 무엇을 이루었는가, 둘째 그동안 이룬 자유를 어떻게 유지·발전시킬 것인가, 그리고 국민들에게 어떤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독립 100주년 때에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국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역사의 기점에 만난 아프리카인들은 축제 분위기보다는 ‘과거를 되돌아보고 도약의 밑거름으로 삼자’는 성찰의 분위기가 강했다. 지지 부위원장은 “코트디부아르가 속한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13개 회원국 중 작은 섬나라 카포베르데와 세네갈을 빼면 모든 나라들이 분쟁을 겪었다”면서 “왜 아프리카에서는 분쟁이 가시지 않는지, 지나온 반세기의 방향성이 맞았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가 거의 형성되지 못한 아프리카의 특수성 때문에 성찰의 분위기조차도 국가가 주도하는 양상이었다.

독립 50년에 대한 다소 냉소적인 반응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57년 독립한 가나는 2007년 옛 식민종주국인 영국의 사절단을 불러모아 그간의 성과를 홍보하고 축제를 열었다. 가나는 서아프리카에선 인프라가 가장 좋고 경제개발에 전념하는 ‘똑똑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나의 독립 반세기보다는 오히려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문이 더 주목받았다. 오바마가 상아해안의 노예무역 유적을 찾아 “아프리카의 책임과 권리”를 역설하자 그제서야 세계는 그곳에 눈을 돌렸다. 잘 알려진 대로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가나 출신이지만, 퇴임 뒤 잠시 귀국해 열렬한 환영을 받고는 다시 스위스 제네바로 가 활동하고 있다.

코트디부아르의 초대 대통령 우푸에 부아니는 군대를 키우는 대신 국가재정을 인프라 확충에 돌리고 프랑스군을 주둔시켜 치안을 맡겼다. 덕분에 군사독재는 피할 수 있었지만 프랑스와의 단절이 늦어졌다. 지금도 프랑스군이 주둔하면서 치안의 일부를 담당한다. 아비장대학 인문학부의 아누마타키 아케세 교수는 “사람들을 좌절케 하는 것은 50년 전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의 아프리카”라면서 “아직도 옛 식민지 국가들의 자원에 의존하는 프랑스도 참 불쌍한 나라”라고 말했다. 아누마타키 교수는 급여가 적어 컨설턴트를 겸업하고 있었다. 아비장 대학은 학생 수가 5만명인데, 종이가 모자라 시험도 제대로 못 치르는 형편이었다.

<아비장 |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입력 : 2010-05-03 17:52:08수정 : 2010-05-04 01: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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