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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경향)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11) 한국에서 아프리카인으로 산다는 것

블루스웨터 2011. 3.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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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꿈의 나라’ 찾아온 그들, 현실은 단속·차별의 ‘닫힌 나라’

‘아프리카 거리’로 알려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 지구대 뒷골목. 지난 3월 이곳의 한 아프리카 식당을 찾았다. 한국에서 먹기 힘든 플랜틴(바나나튀김)과 병아리콩 스튜를 팔고, 위성TV로 나이지리아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식당 안에서는 나이지리아인들이 우르르 몰려 브라운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종업원들도, 손님들도 모두 나이지리아인이다. 아프리카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한국인’이 찾아왔다는 것에 오히려 그들이 호기심을 느끼며 신기해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 지구대 뒷골목의 ‘아프리카 거리’. 이곳에는 아프리카인들이 자주 찾는 식당과 미용실 등이 모여 있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지난달 24일 이곳을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취재진임을 밝히자 종업원들과 손님들, 길 밖에 모여 떠들고 있던 아프리카인들의 태도가 갑자기 싸늘하게 바뀌었다. 메뉴를 가져다주었던 여성 종업원은 부엌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젊은 남성도 “직원이 아니다”라면서 취재진을 몰아내려했다. 어렵사리 한국인 식당 주인과 전화 연결이 되었지만 주인은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다, 우리 식당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말만 했다.

식당 윗골목에 있는 레게 미용실. 아프리카인들은 곱슬머리를 그대로 두면 피부 속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짧게 밀거나 펴서 고정을 해야 한다. 서울에도 그들만의 미용실이 생겼다. 아프리카인 여성 미용사가 손님들의 머리를 말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들어가자 겁을 먹은 듯했다. 그곳에 있던 남성은 “보스(사장)에게 물어라,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면서 입을 닫았다.

한 달여 전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농촌을 찾았을 때, 현지 주민들은 한국에서 온 기자를 붙들고 “우리 딸이 한국에 가서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리도 한국으로 가고 싶은데 한국에 들어가는 비자를 받을 수 있느냐”고들 물었다. 그들에게 한국은 ‘가난에서 벗어난 꿈의 나라’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난 얼마 안되는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오히려 한국인들이 ‘도망치고 피해야 할 대상’으로 비치는 듯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미래의 모델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그들에게 닫혀 있는 나라, 결코 문을 열어주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한 달 동안 행정안전부가 전국에 있는 외국인 거주자들의 실태를 조사해 ‘2009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조사 결과’라는 보고서를 냈다.

불법·합법 체류자를 가리지 않고 각 지자체 안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과 귀화자, 외국인 자녀 숫자를 조사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내 외국인 수는 총 110만6884명이었다. 그중 절반이 중국인(조선족 포함)이었고, 그 나머지도 아시아인이 대부분이었다. 아프리카인의 숫자는 따로 나와 있지 않았다. 한 금융회사가 국내 외국인 중 고소득 전문인력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만든 외국인 현황 자료에는 나이지리아인 794명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인 225명이 통계에 잡혔다.

그러나 이태원에서 아프리카 식당을 운영하면서 무역회사 일도 겸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출신 사업가에게 “나이지리아인이 얼마나 들어와 있느냐”고 물었더니 “2000명,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0명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이 올 1월 조사한 ‘장·단기 체류 외국인 현황’에 따르면 국내 체류 중인 아프리카인은 7191명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주민 숫자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불법체류자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아프리카 국가 출신들에게는 단순노동비자(E-9)를 발급해주지 않는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관계자는 “한국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노동력을 받아들이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아프리카인은 거의 다 불법체류자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예외가 있다면 남아공 출신의 백인 영어강사들이다. 남아공은 1994년 흑인정권이 출범한 뒤 흑인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흑인경제력육성(BEE)’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과거 기득권을 누리던 백인들은 일자리를 잃고 우르르 유럽, 아시아 등지로 떠났다. 영어교육에 목숨을 걸다시피하는 한국도 그들의 ‘시장’ 중 하나였다. 한국 내 남아공인들이 인터넷 사이트 ‘페이스북’에 만든 클럽에는 800명이 가입했다. 그런데 한국은 이른바 ‘영어 네이티브 국가’ 출신들을 영어강사로 받아들이면서도 남아공을 제외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다른 ‘영어권 국가’ 출신들은 받지 않는다. 이 또한 ‘한국식 인종차별’의 한 모습이다.

한국에 와 있는 남아공 출신들은 아프리카인으로서 한국을 어떻게 느낄까. 2006년부터 서울에 살면서 한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H씨가 지난해 겪은 일이다.

국내의 한 유명 일간지에서 H씨가 일하던 대학의 여름방학 영어교육프로그램을 취재하러 학교를 방문했다. H씨의 수업을 참관하고 인터뷰를 해 갔는데, 며칠 뒤 발행된 이 신문 기사에는 “금발에 푸른 눈의 미국인 강사가 수업을 하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H씨는 갈색 머리의 남아공 여성이다. 그는 “남아공 강사에게 대학생들이 영어를 배운다는 것을 한국의 언론은 받아들일 수 없었나보다”면서 씁쓸해했다.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인들이 받는 차별은 그보다 훨씬 클 것이 뻔하다.

구호기구 ‘피스프렌드’의 황학주 대표는 1992년부터 동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에서 구호활동을 해왔다. 그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이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아프리카는 검고, 비가 안 오고, 못 살고, 그래서 열등하다는 시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 사람들에겐 그들 나름의 완전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보다 못한 것도 있고 뛰어난 것도 있다는 점을 보지 않는다.”

심지어 아프리카를 이해하고 도우려 하는 사람들조차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황 대표는 지적했다. 우리가 가진 많은 것들을 그들과 나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돕는다’고들 여긴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이 많이 가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봐요. 한국에 아프리카인들이 적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지구상의 가난한 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는 “한국은 주요 20개국(G20)에 끼었다고 자랑하지 말고 큰 그늘을 가진 큰 나무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적은 수의 아프리카인들이라도 이태원 같은 곳에 한데 모여서 어울려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라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과 거리를 두고, 번번이 눈칫밥을 먹어야 하지만 그래도 이태원에는 아프리카인들이 모이는 교회와 식당과 가게와 미용실이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거리가 있는 이태원1동과 한남동, 보광동 주변조차도 ‘뉴타운’ 건립계획에 따라 2017년까지는 모두 허물어질 예정이다.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입력 : 2010-05-31 17:54:19수정 : 2010-05-31 17: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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